목회칼럼

    부족함이 없으리니? 부족함이 없나요? 시편 23편 1절 묵상
    2026-09-08 10:43:33
    이경로
    조회수   110

    부족함이 없으리니_에흐사르(אֶחְסָר)에 대한 묵상

    시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성경에서 가장 많이 암송되는 구절 하나를 꼽으라면 아마 이 구절일 것입니다.

    어린아이도 외우고, 병실에서도 읽히고, 장례식장에서도 읽힙니다. 신앙이 없는 분들조차 이 구절은 어디선가 들어 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이 구절이 우리 마음에 늘 편하게만 들리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뒷부분이 그렇습니다.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솔직하게 여쭙겠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에 부족한 것이 없으십니까.

    통장은 넉넉하십니까. 건강은 어떠십니까. 자녀 문제는 다 풀리셨습니까.

    그러면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이런 마음이 듭니다.

    “나는 부족한 것투성이인데, 그럼 여호와가 내 목자가 아니라는 말인가.”

    이 구절을 붙들고 위로를 받아야 할 자리에서, 오히려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부족함이 없어야 목자를 모신 사람인데, 나는 부족하니까요. 이것이 이 구절이 우리에게 은근히 남기는 부담입니다.

    여기에 번영신학이 얹히면 문제가 더 커집니다.

    “믿음이 있으면 부족함이 없다. 여전히 부족하다면 믿음이 부족한 것이다.”

    이런 말이 성립해 버립니다. 그런데 히브리어 원문은 그런 말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יְהוָה רֹעִי לֹא אֶחְסָר

    아도나이 로이 로 에흐사르

    히브리어로 단 네 단어입니다. “여호와, 나의 목자, 아니다, 에흐사르.”

    이 마지막 단어 에흐사르를 함께 보겠습니다. 어근은 하사르(חסר)입니다.

    뜻은 ‘결핍되다, 모자라다, 줄어들다, 바닥나다 혹은 잃다’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단어가 상태가 아니라 움직임을 가리키는 동사라는 점입니다.

    ‘부족함이 없다’는 우리말은 ‘창고에 물건이 가득 쌓여 있는’ 그러한 상태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어는 그런 의미라기 보다 ‘줄어드는 움직임, 바닥나 가는’ 과정을 말합니다.

    다른 곳들을 보시면 훨씬 분명해집니다.

    첫째, 광야의 만나입니다.

    출 16:18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더라” 만나는 하루치입니다. 창고에 쌓아 둘 수 없습니다. 이튿날까지 두면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40년 동안 단 한 번도 ‘넉넉한 상태’에 있어 본 적이 없습니다.

    늘 하루치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들에게 부족함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신 2: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고…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 곳간이 가득 찼기 때문이 아닙니다. 매일 아침 다시 채워졌기 때문입니다.

      둘째, 사르밧 과부의 기름병입니다. 이 구절이 결정적입니다.

    왕상 17:14 “여호와께서 비를 지면에 내리시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여기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가 바로 로 테흐사르입니다. 시편 23편의 로 에흐사르와 사실상 같은 형태입니다. 주어만 “나”에서 “기름”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그 과부의 통에 가루가 가득했습니까. 아닙니다. 마지막 한 줌이었습니다. 아들과 마지막 떡을 구워 먹고 죽으려던 참이었습니다. 그 통은 끝까지 가득 차지 않았습니다. 다만 바닥나지 않았을 뿐입니다. 이 단어는 “나는 모자란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가 아니라 “나는 바닥나지 않는다”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어의 이 형태는 앞으로 계속 이어지는 일을 가리킵니다.

    한 번 채워 주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내일도 그렇게 하시겠다는 말입니다.

    이 번역이 정말 맞는지, 시편 23편 전체를 놓고 확인해 보겠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단어 하나만 붙들고 우기면 안 되니까요.

    만약 이 시편이 “부족함 없는 풍요로운 삶”을 노래하는 것이라면, 뒤에 이어질 내용은 평온해야 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렇게 이어 갑니다.

    4절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골짜기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 안을 지나갑니다.

    5절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원수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원수가 지켜보는 앞에서 밥을 먹습니다.

    보십시오. 이 시편 어디에도 문제가 사라진 장면이 없습니다.

    골짜기도 그대로 있고 원수도 그대로 있습니다. 다만 그 한복판에서 먹이시고 인도하십니다.

    그러니 1절의 “부족함이 없다”를 “아무 문제 없는 상태”로 읽으면, 이 시편은 2절부터 스스로 무너집니다. 앞뒤가 맞지 않게 됩니다. 다윗 자신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사울에게 쫓겨 굴속에 숨었고, 자기 아들에게 왕좌를 빼앗겨 맨발로 도망친 사람입니다.

      그래서 시편 23편 1절을 원어의 결을 살려 다시 읽으면 이렇게 됩니다.

    “여호와가 나를 치시니(인도하시니), 나는 바닥나지 않는다.”

    풀어서 옮기면 이렇습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목자가 되어 주시니, 나는 결코 바닥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부족함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부족해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시는 분에 대한 고백입니다.

    이 둘은 완전히 다른 말입니다. 앞의 것은 내가 가진 것의 양을 말합니다. 뒤의 것은 나를 지키시는 분을 말합니다. 앞의 것은 곳간을 보게 하고, 뒤의 것은 목자를 보게 합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어머니의 밥상이 떠오릅니다.

    넉넉한 살림이 아닌 집에서 자란 분들은 아실 겁니다. 우리 어머니들의 밥상은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반찬이 서너 가지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밥이 모자란 적은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곳간을 가득 채워 두고 밥을 지으신 것이 아닙니다. 쌀독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오늘 아이들이 굶지 않도록 밥을 지으셨습니다. 그러고는 당신 몫을 덜어 아이 그릇에 옮기셨습니다. 그 밥상은 넉넉해서 차려진 것이 아니라, 사랑해서 차려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통장을 가득 채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적이 없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바닥나게 두지는 않겠다고. 지금 형편이 넉넉지 않으십니까. 남은 것이 얼마 되지 않아 보이십니까. 이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사르밧 과부의 통은 끝까지 가득 차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비가 내리는 그날까지 바닥나지도 않았습니다. 여러분의 통도 그렇습니다.

    가득 차 있지 않다고 해서 목자가 안 계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바닥나지 않고 여기까지 온 그 사실이, 목자가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지난 세월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넉넉해서 오셨습니까.

    아닙니다. 늘 아슬아슬했는데, 이상하게 바닥나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오늘도 우리 목자는 하루치를 들고 우리 앞에 서 계십니다. 내일 것까지 주시지는 않습니다. 내일은 내일 다시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나는 바닥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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