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4:13절 묵상
    2026-10-03 12:56:16
    이경로
    조회수   48

    빌립보서 4장 13절 묵상

    무엇이든 해내는 힘이 아니라,
    무엇이든 견디는 힘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4장 13절

    교회에 다니는 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셨을 구절입니다. 수험생은 책상 앞에 붙여 두고, 운동선수는 시합 직전 마음에 새깁니다. 가게를 새로 열 때 멋진 액자로 걸어 두거나, 취업을 준비하며 다이어리에 적어 두기도 합니다. 두렵고 떨리는 순간마다 수많은 사람에게 큰 용기를 준 참 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는 한 가지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이 편지를 쓸 때 바울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감옥입니다. 1장 13절에서 바울은 자기가 매여 있다고 말합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쓴 사람이 정작 감옥 문 하나를 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가고 싶은 곳에 갈 수도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빌립보 교인들을 만나러 갈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말한 “모든 것”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슈퍼맨처럼 뭐든지 다 이루어 내는’ 그 “모든 것”이 아니었던 셈입니다.

    1“할 수 있다”는 무언가를 이루는 능력이 아니라 “버티는 힘”입니다

    “할 수 있다”로 번역된 헬라어는 ἰσχύω(이스퀴오)입니다. ‘힘이 있다’, ‘감당할 힘이 된다’는 뜻입니다. 무언가를 이루어 내는 재주라기보다, 무게를 버텨 내는 힘에 가까운 말입니다. 이 단어의 성경 속 용례를 살펴보면 분명해집니다.

    마가복음 5장 4절, 거라사의 귀신 들린 사람 이야기입니다. 쇠사슬도 끊어 버리는 그 사람을 두고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합니다. 여기 “힘이 없다”가 바로 이 단어입니다.

    누가복음 14장에서 망대를 짓다가 기초만 놓고 끝내지 못한 사람을 두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합니다. 역시 같은 단어입니다. 끝까지 감당할 힘이 모자랐다는 말입니다.

    쉽게 말해, 바울의 고백은 “나는 뭐든지 척척 해낼 수 있다”가 아니라 “내게 어떤 형편이 닥쳐와도 나는 넉넉히 감당해 낼 수 있습니다”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앞뒤 구절을 읽어 보면 이 뜻이 명확해집니다.

    11절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절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그리고 바로 13절이 이어집니다. 그러니까 13절의 “모든 것”은 바로 앞에 늘어놓은 그 모든 형편입니다. 바울이 감당할 수 있다고 말한 “모든 것”은 배부를 때도, 배고플 때도, 넉넉할 때도, 바닥을 칠 때도 무너지지 않는 “그 모든 삶의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 NIV 2011년 개정판은 이 구절을 “I can do all this”, 곧 “이 모든 것을”이라고 번역했습니다.

    2매일 새롭게 채워지는 힘입니다

    “능력 주시는 자”라는 표현의 성경 원어 뉘앙스를 살려 보면, 한 번 힘을 툭 던져 주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끊임없이 내 안에 힘을 불어넣어 주고 계신 분’이라는 느낌이 담겨 있습니다.

    한 번 주고 끝나는 힘이 아닙니다. 빛 하나 들지 않는 감옥에서 하루하루를 버틸 힘이 매일 새롭게 공급되고 있었다는 바울의 생생한 고백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을 이렇게 읽어야 맞습니다.

    이렇게 읽어 보십시오
    “매일 나를 붙들어 새 힘을 주시는 주님 안에서, 나는 어떤 상황이 닥쳐와도 무너지지 않고 감당할 수 있습니다.”

    3그 힘은 곁에 있는 사람을 통해 오기도 합니다

    바울은 혼자서 도를 닦듯 견딘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다음 구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덧붙입니다.

    14절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혼자서 다 견딜 수 있다며 큰소리친 줄 알았는데, 곧바로 “너희가 곁에서 함께 아파해 줘서 참 고맙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버티는 힘은 때로 이렇게 사람의 따뜻한 손길을 통해 찾아옵니다. 빌립보 교인들이 십시일반 모아 보낸 선물과, 먼 길을 달려와 준 동역자의 발걸음이 바로 바울을 일으켜 세운 하나님의 힘이었습니다.

    오뚝이를 떠올려 보십시오. 앞으로 밀어도, 뒤로 밀어도 다시 일어섭니다. 안 넘어져서가 아닙니다. 무게 중심이 아래쪽 깊은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배웠다는 비결이 이것입니다. 풍부 쪽으로 밀려도 교만으로 넘어지지 않습니다. 궁핍 쪽으로 밀려도 절망으로 쓰러지지 않습니다. 중심이 “그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위로가 있습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은 “너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스러운 채찍질이 아닙니다. 시험에 떨어져 낙심한 날에도, 가게 문을 닫아야 할 만큼 어려운 순간에도, 병상에 외롭게 누워 있는 시간에도, 그 자리에서 결코 아주 무너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입니다.

    그러니 무언가를 멋지게 해내지 못한 날이라도 자책하지 마십시오. 이 말씀은 여전히 우리를 위한 말씀입니다.

    오늘의 묵상 질문
    오늘 삶의 어떤 무게가 여러분을 밀어내고 있습니까?

    주님이 오늘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부어 주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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